대학 축제의 계절 또 왔는데…선정성, 소비·향락 ‘여전’

2016년 9월 21일

akr20160920164400061_01_i출처 : 연합뉴스(이하)


각 대학 가을축제 일정과 출연 가수 명단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있어 누가 언제 어느 대학을 찾는지 큰 품을 들이지 않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팬을 다수 보유한 걸그룹부터 방송 프로그램으로 인기몰이하는 힙합 래퍼, 홍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인디밴드까지 출연진 범위는 다양하다.

지난 20일 축제를 시작한 강원대에는 인기가수 임창정과 걸그룹 러블리즈, 힙합 래퍼 도끼, 비와이 등이 출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열리는 수원여대 축제에는 크러쉬, 딘, 빈지노, 개그맨 박명수 등이 공연에 나선다.

경기대는 여자친구와 에픽하이, 한양대 에리카캠퍼스에는 원더걸스, 박재범, 싸이먼디 등이 찾을 예정이다.

10분 남짓한 공연에서 2∼3곡 정도 부르고 가는 연예인들의 몸값이 적게는 수백만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에 이른다.

여기에 무대 설비치 등 부대 비용까지 더하면 액수는 더 높아진다.

지난 5월 축제를 연 전북대 경우 전체 예산에서 절반이 넘는 약 4천만원이 연예인을 섭외하는 데 지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 소재 대학교 총학생회 관계자는 “얼마나 유명한 연예인이 왔느냐가 사실상 축제 결과를 판단하는 요소”라며 “축제 때 학생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참여를 부추기기 위해서는 연예인 공연만 한 게 없다”고 귀띔했다.

축제가 학생회비와 교비(등록금 등)로 치러지다 보니 돈의 쓰임새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운택 계명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축제에 사용되는 돈은 결국 본인(학생)들의 등록금”이라며 “축제를 즐기는 것도 좋으나 예산을 사용하는 방식에 대한 성찰이 동반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 선정성 논란·사고 우려 여전…대학 측 대책 마련 부심

전날부터 3일 간 가을 축제 막을 올린 강원대는 선정적인 축제 문구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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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色끼 발光하라’라는 문구를 두고 학내 커뮤니티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보기 불편하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강원대의 색(色)과 끼를 빛내자(光)는 의미였으나 학생들은 ‘정말 별로다’, ‘무슨 생각으로 저런 문구를 중앙도서관에 게시했는지 모르겠다’는 글이 게시됐다.

빨간색 입술이 크게 그려진 포스터를 두고도 선정성 논란이 불거졌다.

총학생회는 “티저광고와 같은 기대감과 재미를 높이려고 컨셉 일부를 활용해 중의적이고 센스 있는 표현으로 한정된 공간에 압축했으나 오해의 소지를 만들고 논란을 일으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지난해 한양대 에리카캠퍼스의 가을축제 기간에도 한바탕 소동이 빚어졌다.

교내에 문을 연 학생 주점에서 살인범 ‘오원춘’의 이름이 담긴 메뉴가 등장한 것이다.

‘오원춘 세트’는 곱창볶음과 닭발, 튀김 등이 나오는 메뉴로 1만원씩 판매됐다.

또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고 출소한 연예인 고영욱씨의 이름을 딴 ‘고영욱 세트’도 안주 메뉴로 등장했다.

비슷한 시기 축제를 연 전북 군산대학교도 걸그룹 사진이 들어간 선정적인 주점 포스터가 SNS에서 유포돼 물의를 빚었다.

4년 전 경기대에서는 가을축제 당시 학생들이 음주 운전을 하다가 차량 전복사고를 내 1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친 적도 있다.
대학들은 축제 기간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와 음주사고 등 불상사를 막고자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내달 5일부터 축제를 여는 광주대학교는 전문행사 경호팀과 계약을 맺어 안전사고에 대비했다고 밝혔다.

술은 알코올 농도 수치가 낮은 것만 허용하고 안전을 위해 병은 스포츠 경기장처럼 아예 반입 금지할 예정이다.

경기대는 음주감지기를 도입해 축제 기간 정문과 후문을 나서는 차들을 일일이 단속하고, 축제 포스터 등에 성적이거나 논란의 소지가 있는 문구가 들어가지 않도록 계도할 계획이다.

◇ “학생과 학교가 ‘대학 축제’ 방향성 논의해야”

상업화되고 놀이 위주로 변질한 대학 축제를 바라보는 내·외부 시선은 곱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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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기관인 대학에서 기업 등 외부 자본이 스폰서 형식을 빌려 축제에 개입하고, 수일간 진행되는 축제는 우려스러울 정도로 소비적이다.

대학 관계자는 ‘대학 축제’ 방향성을 논의하고 레크리에이션(recreation)이 가진 ‘오락’이라는 뜻 말고 ‘다시 창조하다’는 의미를 되새겨 고유한 축제 문화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경기도에 있는 4년제 대학교 학생처 관계자는 21일 “다른 학교 사례를 보더라도 연예인 공연이나 주점 등을 하지 않고 학생이 전부 기획하고 만드는, 학생 중심적인 축제를 여는 곳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출연하는 연예인의 유명세로 축제 성과를 판가름하는 현실과 학생들이 ‘뭔가 다른’ 축제를 만들려고 해도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게 요즘 성격의 축제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요소”라며 “학생과 학교가 함께 축제 의미를 재정립하고 그 방향성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재진 한양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도 “신나게 놀면서도 평소 소원했던 학우, 교수들과 소통을 한다든지, 각 대학의 개성과 가치를 되새기는 창의적인 장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며 “학생과 교수가 함께 고민하면 충분히 좋은 프로그램을 마련할 수 있을 텐데 대학 모두가 ‘축제는 유명 가수 공연과 술’에 사로잡혀 아무도 이러한 노력을 하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정완 대진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소비와 향락이 넘치는 대학 축제는 학생들에게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특히 지방의 대학은 지방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개성 있는 축제가 기획되면 한다”고 조언했다.

(백도인, 최재훈, 형민우, 신민재, 박영서, 류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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