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 ‘한강블루스’ ‘춘몽’…흑백영화의 미학

2016년 9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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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엔터온 뉴스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영화라는 장르가 시작될 때, 모든 영화는 흑백(1~2가지의 단색 필름 포함)으로 구현됐다. 하지만 1950년대 이후 현대적인 의미의 컬러필름이 발명되면서 흑백영화는 빠르게 사라졌고, 사람들은 흑백이 아닌 컬러 매체에 익숙해졌다. 흑백영화는 구시대의 유물로 여겨지면서 ‘옛것은 지루하다’는 편견을 갖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흑백영화는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다. 과거처럼 어쩔 수 없는 수단이 아니라 특별함을 위한 선택이다. 2016년에는 영화 ‘동주’를 시작으로 21일 개봉한 ‘한강블루스’,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춘몽’까지 흑백으로 제작됐다.

물론 흑백영화를 자주 볼 수는 없다. 사진의 경우엔 분위기에 따라 흑백사진도 자주 쓰이지만, 흑백 영상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약 100분 내외의 시간 동안 관객의 눈을 사로잡아야 하는 영화에 색깔이 없다는 것은 지루함을 주기 쉽다. 때문에 흑백영화는 컬러 영화보다 극 전체를 지루하지 않게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더 많이 가지고 있기도 하다.

감독들은 세 가지 이유로 흑백영화를 선택한다. 첫 번째는 예산 문제다. 대체적으로 흑백영화는 예산이 많이 들지 않는다. 보통 영화들이 30억, 요새는 100억 원대의 투자가 이뤄지는 것과 달리 ‘동주’는 5억, ‘한강 블루스’는 겨우 1억이 들었다. 부담이 적으면 감독은 조금 더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다.

‘한강블루스’ 관계자는 “예산이 많이 들어간 영화는 아니다. 총 1억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만약 컬러로 촬영했다면, 조명ㆍ미술ㆍ의상ㆍ분장ㆍ세트 비용ㆍ색 보정ㆍCG 후반 작업 비용 등이 추가되기 때문에 10억 정도는 들지 않았을까 싶다”라고 설명했다. ‘동주’의 이준익 감독은 “일제시대를 재현하는데 제작비가 많이 든다. 그런 무게를 윤동주 시인에게 지게하고 싶지 않았다. 즉 저렴하게 찍으려고 보니까 흑백이었다”고 이야기 한 바 있다.

두 번째는 흑백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다. 현실은 컬러의 세계다. 사람들은 언제나 컬러로 세상을 보지만, 흑백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면 기존의 것도 새롭게 보인다. 게다가 흑과 백으로 엄격하게 나뉘는 이미지 덕분에 오롯이 배우의 표정에 집중을 하게 되는 장점도 있다. ‘동주’의 주연 배우인 강하늘은 “흑백영화는 소설과 같다. (소설의 활자를 읽고 나면) 머릿속에서 컬러풀하게 많은 그림이 떠오른다. 흑백영화도 내 마음대로 색을 입혀 컬러풀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고 의견을 전했다.

또한 각 작품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극대화 되는 효과가 나기도 한다. ‘춘몽’의 장률 감독은 “‘춘몽’은 ‘봄날의 꿈’이란 뜻이다. 가난한 동네인 수색역에서 촬영을 했는데, 평소 내 기억 속에 수색역은 언제나 컬러가 아니었다. 어제 갔다 왔는데도 흑백 느낌이다. 이런 질감에서 사는 사람들도 꿈에서는 봄이 오지 않느냐란 생각에 흑백으로 촬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강블루스’의 이무영 감독은 흑백영화를 만든 이유로 “한겨울에 촬영을 했는데, 컬러로 촬영하면 예쁜 느낌이 들지 않는다. 흑백으로 갔을 때 예술적 이미지로 살아나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이준익 감독 역시 “처음부터 흑백영화를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었고, 중간에도 바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윤동주 시인을 흑백으로 회상하기 때문에, 그의 영화를 찍는데 흑백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결과도 나쁘지 않다. ‘동주’는 116만 명을 모아 손익분기점을 훨씬 넘겼으며, ‘춘몽’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초청돼 국내외 관객과 소통할 예정이다. 흑백영화는 자신만의 매력과 필요성으로 여전히 살아남았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