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이 고려 충숙왕에게 보낸 서한의 내용

2016년 9월 30일

교황이 고려 왕에게 보낸 편지와 ‘금속인쇄술 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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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이하)


전파 개연성은 있지만 학계 연구는 거의 없어
“구텐베르크가 고려 인쇄도구 가지고 있었다” 주장도

(서울=연합) 김계연 기자 = 교황이 1333년 고려 충숙왕에게 보냈다는 서한은 구텐베르크 금속활자가 고려 금속인쇄술의 영향을 받았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실제로 그렇다면 전 세계 역사교과서를 바꿔야 할 대사건이다. 그러나 일단 교황이 고려 왕에게 편지를 보낸 정황과 인쇄술의 전파 사이에는 별다른 인과관계가 없다. 교황이 보냈다는 서신 역시 실물을 놓고 서지학적으로 분석해야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금속활자의 비밀들'(우광훈 감독)의 영상에 나오는 교황 서신을 본 연구자들은 아무리 비밀수장고에서 완벽히 보존됐더라도 800년 된 서한 필사본치고는 지나치게 깨끗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다큐멘터리 제작팀은 필사본의 재질이 양피지여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고 설명한다.

또 1300년께 쓰인 ‘동방견문록’에 이미 ‘카울리’라는 이름으로 고려가 소개됐고 앞서 신라도 서역과 활발히 교역했던 점을 보면 유럽과 고려 사이의 직간접 교류가 특별한 일도 아니다. 고려 충렬왕은 원나라 쿠빌라이칸의 딸을 부인으로 맞기도 했다.

학계에서는 다큐멘터리 제작팀의 논리를 떠나 고려 금속인쇄술과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의 상호 영향에 대한 연구가 사실상 전무한 만큼 충분히 따져볼 만한 일이라는 견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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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는 앞서 제지술이나 목판인쇄술이 모두 중국에서 발명돼 전 세계에 전파된 만큼 금속인쇄술 역시 동서양 간 교류가 있었을 법하다는 의문에 따른 것이다.

외국에서는 간혹 이런 연구가 진행됐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 올리비에 드로니용 박사는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를 3D 현미경으로 조사한 결과 독일이 주장하는 ‘금속주형주조법’이 아닌 고려의 ‘주물사주조법’으로 만든 활자로 인쇄됐다고 밝혔다.

영국 셰필드대 존 홉슨 교수는 저서 ‘서구문명은 동양에서 시작되었다’에서 “인쇄술(금속활자)의 기원을 16세기 중국과 14세기 초의 한국에서 찾을 수 있다”고 썼다.

일각에서는 구텐베르크가 초상화에서 들고 있는 상징물이 주물사주조법의 주형틀에 새겨진 모자(母字)와 흡사하다는 점을 ‘금속인쇄술 서양전파설’의 근거로 제시하기도 한다. 청주대 문헌정보학과 김성수 교수는 이런 연구결과를 토대로 “구텐베르크 활자의 주조법은 고려의 주물사주조법의 영향을 받았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직접적인 증거는 없는 상태다. 청주고인쇄박물관 황정하 학예연구실장은 “직지라고 단정하지는 못하지만 구텐베르크가 한국 인쇄술에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있다”며 “국내에는 두 금속활자의 영향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없어 박물관 차원에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와의 자존심 싸움이라는 뻔한 목적의 연구 아니겠냐는 반론도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옥영정 교수(서지학)는 “중국에서 서양에 영향을 줬을 수는 있다. 하지만 구텐베르크가 고려의 영향을 받았다는 정황은 아직 없고 우리 금속인쇄술이 최고라는 생각이 앞선 것 같다”고 지적했다.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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