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가 ‘아이를 낳기 위한’ 여성들을 고용한 충격적인 이유

2017년 10월 23일

1936년, 열성 나치 지지자이자 이제 갓 학교를 졸업한 힐데가르드 투르츠(Hildegard Trutz)는 순수 독일 혈통의 여성으로서, SS 장교들과의 합방으로 아리안 족 아이를 낳기 위해 선택되었다.

최근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 위티피드에서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비밀리에 실행되었던 충격적인 인종 개량 프로젝트를 다룬 글이 공개되어 많은 관심을 모았다.

1930년대, 나치 독일은 푸른 눈과 금발의 ‘순수 아리안 인종’ 아이를 만들기 위한 비밀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겼다.

소위 ‘엘리트 독일인’으로 불리는 이들이 독일 제국의 새로운 세대를 낳고 기르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나치 친위대 SS의 우두머리 하인리히 힘러(Heinrich Himmler)가 고안한 이 캠페인은 ‘레벤스보른(Lebensborn)’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하인리히 힘러는 이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만일 아리안 족 인종 개량에 성공하여 200만 명의 순수 아리안 인종을 만들 수만 있다면 우리가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인종 개량 프로젝트를 위해 나치 친위대 SS의 장교들은 정해진 여성과 함께 혼내, 혼외 정사를 맺을 것을 명령받았다. 하인리히 힘러는 ‘내 부하들은 반짝이는 눈동자로 상대 여성이 사생아를 가지게 됐다는 보고를 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1. 레벤스보른 프로젝트의 목표

1900년대 초반, 독일의 출생률은 1차대전 직후 패전으로 인한 남성 인구 부족과 극심한 경기 침체로 인해서 급격하게 하락했다. 여성의 낙태율도 이 시기에 독일 역사상 최고치를 경신한다.

1930년대에 이르렀을 때 독일의 출생률은 이미 기록적으로 낮은 수치까지 추락했다. 이런 배경에서 나치는 우월한 아리안 족 인종을 생산해 출생률 저하 현상을 뒤집기 위한 ‘레벤스보른’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긴다.


2. 레벤스보른 가정과 환경

뱃속의 태아가 순수 아리안 인종으로 밝혀진 임산부들은 수많은 경제적인 혜택과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혹은 아이를 ‘레벤스보른 가정’이라는 위탁 보육 시설에 맡길 수도 있었는데, 나치는 레벤스보른 가정에 수용된 아이들에게 독일 최고 수준의 보육과, 나치 교육 시스템을 제공했다.

독일에만 10 군데의 레벤스보른 가정이 세워졌다. 최초의 레벤스보른 가정은 1936년 뮌헨 교외의 작은 마을에 세워졌다. 2차대전 발발 이후 힘러는 나치가 점령한 유럽의 다른 지역들에도 레벤스보른 가정을 설립한다. 기록상으로 노르웨이에만 9 곳이 만들어졌고 이어서 오스트리아에 두 곳, 프랑스, 네덜란드, 덴마크, 룩셈부르크에 각각 한 곳씩 설립되었다.


3. 레벤스보른 프로젝트에 참여한 독일인 여성의 경험담 

힐데가르드 투르츠(Hildegard Trutz)는 1933년 여성 히틀러 집단이라고도 불리던 독일소녀연맹(Bund Deutscher Madel, BDM)에 가입한 열렬한 나치 지지자였다. 회고록에서 그녀는 “나는 긴 다리와 큰 신체와 함께 출산에 유리한 큰 엉덩이와 넓은 골반을 가졌다. 이 때문에 나는 당시 북유럽 여성의 이상적인 전형으로 여겨졌다.”라고 밝혔다.

1936년 그녀가 18살이던 해, 투르츠는 독일소녀연맹의 지도자에게 졸업 후 진로에 관한 상담을 받는다. 연맹 지도자는 그녀에게 진로를 아직 정하지 못했다면 “총통을 위한 아이를 낳는 과업에 참여하는 것은 어떤가?”라는 제안을 한다. 순수 독일 혈통이라는 것만 증명되면 엘리트 SS 장교들을 골라서 잠자리를 함께 할 수 있다는 제안에 혹한 투르츠는 레벤스보른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결심한다.

40여 명의 다른 여성들과 함께 독일 바바리아에 위치한 시설에 들어간다. 시설에서 그녀는 아이를 포기할 것을 약속한다는 서류와 어떤 유전 질환도 겪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각서를 제출한다.

모든 검사와 서류 절차가 끝나고, 투르츠는 비로소 그녀와 잠자리를 함께 할 SS 장교들을 소개받는다. 입소 10일 째가 되던 날 투르츠는 장교 중 한 명을 골라야 했다.

회고록에서 그녀는 “모든 장교들이 마음에 들어서 한 명만 고르기가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장교들과의 모든 성적 관계를 즐겼으며 히틀러를 위해 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더욱 기쁨을 느꼈다고 한다.

마음에 드는 파트너를 고른 투르츠는 자신이 고른 장교와 일주일 동안 3일 밤을 함께 보낸다. 이후 장교는 다른 파트너들과 함께 또 다시 관계를 가졌다.

당시 프로젝트에 참여한 SS 장교들은 최소한 4명 이상의 아이를 낳도록 명령 받았다고 한다. 결국 투르츠는 SS 장교의 아이를 낳게 되었고 그 아이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약속대로 레벤스보른 가정으로 위탁된다. 투르츠는 그 이후 단 한번도 자신이 낳은 아이의 향방을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

부모 자식 간의 사랑과 유대마저도 기계 부품을 생산하는 것처럼 뒤바꿔버린 전쟁과 독재의 광기가 빚어낸 또다른 비극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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